티스토리 뷰

목차


    회사에서 "DC형이랑 DB형 중에 골라보세요"라는 안내를 받았을 때, 솔직히 처음엔 뭘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름도 비슷하고, 둘 다 퇴직연금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이 잘 그려지지 않더군요.

     

    저도 약 2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한참 고민했고, 결국 DC형으로 전환해 직접 굴려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두 제도의 차이와 선택 기준을 짚어보겠습니다.

     

    DB형 vs DC형, 결국 '퇴직금 계산법'이 다르다

     

    두 제도를 가르는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누가 돈을 굴리고, 퇴직금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입니다.

     

    DB형은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입니다. 여기서 확정급여형이란, 퇴직금 금액 자체가 미리 정해진 공식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공식은 간단합니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값이 퇴직금이 됩니다.

     

    회사가 돈을 굴리고, 운용 성과와 상관없이 이 공식대로 지급합니다. 즉, 근로자 입장에서는 투자 결과가 내 퇴직금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DC형은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입니다. 확정기여형이란, 회사가 내는 금액(기여금)이 확정되어 있고, 그 돈을 어떻게 굴릴지는 온전히 근로자 본인이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회사는 매년 연봉의 1/12을 개인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줄 뿐이고, 그 이후는 제 몫입니다. 수익이 나면 내 퇴직금이 늘고, 손실이 나면 그것도 고스란히 제가 떠안습니다.

     

    어떤 제도가 유리한지는 두 가지 숫자를 비교해 보면 됩니다. 회사의 임금상승률과 내가 예상하는 투자수익률입니다. 임금상승률이 투자수익률보다 높다면 DB형이 유리하고, 반대라면 DC형이 유리합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DB형 가입자 비율은 전체 퇴직연금 가입자의 약 43%를 차지합니다.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DB형에 머물고 있지만, 임금피크제 적용을 앞두고 있거나 이직이 잦은 분이라면 DC형 전환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만합니다.

     

    어떤 유형이 나에게 맞는지 판단하기 위한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매년 연봉이 꾸준히 오르는 대기업·공기업 장기 근속자라면 DB형
    • 임금피크제 적용 예정이거나 연봉 상승률이 낮은 경우 DC형
    • 이직이 잦아 근속연수가 짧게 유지되는 경우 DC형
    • ETF나 펀드 등 직접 투자에 관심 있는 적극적 투자 성향이라면 DC형

    DC형 직접 굴려봤더니, 안전자산 30% 규정이 변수였다

     

    저는 2년 전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했습니다. 당시 받은 목돈을 ETF(상장지수펀드) 중심으로 세팅했는데, ETF란 특정 지수나 자산을 추종하도록 설계된 펀드를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상품입니다. 낮은 보수와 분산투자 효과 덕분에 퇴직연금 운용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습니다.

     

    전환 이후 미국 증시가 강세를 이어가면서 전체 계좌 수익률은 현재 40%를 넘었습니다. 특히 미국 빅테크 ETF 쪽은 수익률이 100%를 돌파했고, 그것이 전체 계좌 성과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제가 직접 굴려봤는데, 솔직히 이 결과는 전환 당시에도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 DC형에는 위험자산 편입 비율 상한이 있습니다. 주식형 ETF 같은 위험자산에는 최대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고, 나머지 30%는 반드시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안전자산 30% 규정'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규정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했습니다. 안전자산이라면 당연히 채권형 상품이겠거니 싶어서 채권 단일 상품으로 채웠는데, 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그 채권 포지션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정말 뼈아팠습니다. 미리 좀 더 공부했더라면 달랐을 텐데 싶었죠.

     

    금융감독원이 제시하는 DC형 안전자산 인정 범주는 생각보다 폭이 넓습니다. 채권 단일 상품 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있습니다.

     

    • 주식혼합형 ETF: 주식 비중이 30~40% 포함되어 있음에도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어, 증시 상승기에 어느 정도 주식 수익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 TDF(타깃데이트펀드): 은퇴 시점을 목표 날짜로 설정하면 그에 맞춰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리밸런싱해 주는 펀드로, 안전자산 비중을 TDF 하나로 100% 채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 만기매칭형 채권 ETF: 만기까지 보유하면 시중 예금보다 높은 약정 이자를 확정적으로 수취할 수 있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합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목표로 설정한 자산 배분 비율이 시장 변동으로 틀어졌을 때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작업입니다. 저는 현재 채권 단일 상품으로 채워둔 안전자산 30% 포지션을 주식혼합형 상품으로 교체하는 리밸런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자 전 충분히 공부하고 세팅했다면 더 좋은 출발선이었을 텐데, 그 점은 솔직히 지금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퇴직연금은 길게 보면 수십 년의 복리 효과가 누적되는 계좌입니다. 두 제도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중요한 건 내 상황과 성향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입니다.

     

    DC형이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임금 상승보다 투자 수익이 높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DC형을 통해 노후 자산 규모를 훨씬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제 경험으로도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내 임금상승률과 예상 투자수익률부터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퇴직연금 전환 및 운용 결정은 본인의 상황에 맞게 전문가와 상담 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